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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Health Aff > Volume 1(1); 2017 > Article
박: 존 롤스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으로 풀어낸 공공의료
“한센병 퇴치 수준” -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한센병 상황이다. WHO는 인구 10,000명당 1명이하의 유병수준을 퇴치 수준으로 정의하였으니, 실제도 우리병원은 활동성 한센병 환자가 거의 없다. 국내에도 활동성 환자발생이 매년 10명 미만이고 격리가 필요치 않은 치료가능질병이다. 다시 말해 국립소록도병원의 존재이유인 감염병예방법상 ‘감염병의 발생과 유행을 방지하고, 그 예방 및 관리를 위한’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국립소록도병원의 계속 존립 근거는 무엇일까? 공공의료의 한축으로서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라 해야 할까? 어려운 시절 한센병에 이환, 섬으로 격리되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분들을 위한 국가의 마지막 배려일까. 치료시스템이 불비했던 과거, 조기발견도 어렵고 치료조차 못 받아 한센병후유장애에 시달리는 한센병력자들에 대한 국가의 보살핌일까. 그도 아니면 한센병회복자들의 소망을 담은 이상향일까.
실제로 상당수 회복자들이 과거의 아픈 기억 속 소록도를 잊고 지금은 기꺼이 소록도에 거주하시길 원하나 이것만으로는 병원 존립의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 정의의 관점에서 풀어 본다면 어떨까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몇 년 전 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선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정의에 대한 시대적 갈망’이란 분석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사회 근대화 과정,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만이 살 길이라 외치는 이면에서 부도덕과 부정의가 만연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건의료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의료는 시장경제를 밑바탕으로 하는 우리 의료체계에서 정당성을 끊임없이 공격받아 왔다. 민간부문과의 중복, 민간부문을 국민의 세금으로 위협하는 그런 존재로. 그나마 메르스 등 국가 감염병 위기에는 잠시 그 공격이 멈춰지고 위기가 다시 소멸할 즈음 또 다른 공격에 직면하는 상황을 반복해왔다. 이유가 있다. 효용성이 덜하다. 경제적으로 보면 그 만큼 수익을 보장할 수 없으니 일면 타당해 보인다. 원조는 공리주의 즉 J. Bentham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다. 모든 가치를 쾌락과 고통의 틀로 본다. 최대의 만족만 산출된다면 정당한 분배로 볼 수 있으며,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이 다수가 누리게 될 큰 선에 의해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는 도덕과 윤리보다는 쾌락을 선악의 판단기준으로 삼았다. 개인의 쾌락보다 사회의 쾌락을 중시했던 그는 사회의 양적 효용을 늘리는 방법 즉 양적 공리주의자라 불린다. J. S. Mill에 의해 양적 공리주의가 질적 공리주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지만 효용성을 강조하다보니 인권이나 평등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정립한 Rawls가 주목을 받는다. 사회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의’이고 모든 사람은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그 정의는 전체 사회의 복지를 위한 명분아래서도 절대로 유린될 수 없다. 구성원들의 선을 증진하고 이익의 공정한 분배를 효율적으로 규제하는 사회를 소망한다.
John Rawls는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1950년 프리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박홍규1)에 의하면 그의 철학은 미국형 복지정책과 관련이 깊다. 6,70년대 미국의 리버럴리즘의 사상적 기반을 닦은 학자로 당시 John F. Kennedy 대통령이나 민주당과 관련이 깊다. 80년대 레이건 대통령 당선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대두되었고 당시 민주당의 진보적 자유주의 정책들을 과도한 자유, 자유의 남용이라 비판하며 복지에서의 정부 역할을 대폭 축소하였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다양한 사상이 등장했다. 신자유주의 대두 후에도 Rawls는 민주당 좌파와 입장을 같이 하면서 복지와 평등의 실현을 강조한다. Rawls에 의하면 복지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소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공정’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본이 곧 힘이다. 이름은 ‘복지국가’이지만 결국 소수의 힘있는 이들의 영향력에 의해 정책이 결정될 소지가 크다는 의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불평등을 바로 잡기위한 과세도 시행하기 어렵게 된다. 또 불평등이 반복되다보면 국가에 의존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고, 시장의 경쟁원리를 통해 자원을 획득하는 이들과의 간극이 생겨 평등한 관계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Rawls는 ‘재산소유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앞서 언급한 복지 자본주의와는 달리 부와 자본의 소유권을 분산하여 소유하게 함으로써 힘 있는 소수가 경제적, 정치적 삶을 통제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이다. Rawls의 정의론이 흥미로운 것은 사회 구성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위한 혜택을 연구하였다는 점이다.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하자는 것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대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평등의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평등이 무너지는 것은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차등의 원칙)이다. 여기서 최소 수혜자는 기본재화를 가장 적게 분배받는 집단, 특히 저소득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말한다. 보건분야에 적용한다면 공공의료가 아니면 혜택을 입기 어려운 저소득층, 사회적 편견으로 오랫동안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던 이들이 그 대상이다. 게임이론 측면에서도 zero-sum game이 아닌 모두에게 고루 이익이 되는 non zero-sum game, positive sum game(win-win game)에 가깝다 할 수 있다. Rawls는 이를 호혜성으로 설명한다. 이 때 객관적 전체를 볼 수 있는 지점 즉, 공평한(impartial) 관망자 관점이 전제된다.
감염병으로서의 한센병 문제가 거의 끝난 시점에서 국립소록도병원의 계속 존립 근거를 롤스의 철학, 특히 정의와 복지를 실현하는 최소극대화원칙에서 찾으면 어떨까. 일생동안 격리되어 한센병과 싸우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권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최소 수혜자였던 그들에게 ‘최소한의 이익’이라도 돌아가도록 할 수는 없을까. 롤스의 개념을 오늘 날 공공보건에 전면 적용하고자 함이 아니다. 또 공공의료의 정당성을 철학적 기반까지 영역을 넓혀서 찾아야 하느냐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도 있다. 공공의료에 대한 국제적 표준이 존재하지 않고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 그동안 우리는 공공의료를 정의할 때 단어적 의미나 공공의료법률 상 법적 정의를 기본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다보니 공공의료의 필요성, 당위성 등 사회적 합의가 진행될 때 깊이 있는 논의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한계를 뛰어 넘어 철학에서 논의되는 정의가 공공의료를 설명하는 틀이 될 수 있다면, 공공의료에 대한 논의의 지평을 넓히고, 공공의료의 정당성을 획득하는데 일말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즉 공공보건의 출발점, 논거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살펴봄으로써 공중보건의 논거와 토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롤스의 진보적 색채에 대한 논쟁의 부담은 우리사회 일부가 그토록 참고하고자 했던 미국 정의의 역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공공의료는 물론이고 복지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더불어 철학은 물론 사회학, 인류학,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기대해 본다.

Notes

참고문헌

1. 존 롤스 지음, 황경식 역. A Theory of Justice 정의론. 이학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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