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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공의학회 20년사 (2000~2020 Years)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모범활동 사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모범활동 사례

대구·경북 제2생활치료센터 |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모범활동 사례

2020년 봄 대구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 운영 경험과 제언

이재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과 교수

1. 2020년 봄 대구의 코로나19 상황

2월 18일 대구의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된 이후, 다음 날부터 10명, 23명, 50명, 70명, 148명의 순으로 매일 확진자가 2배 이상 증가하였다. 환자 발생 6일이 경과 후 첫 사망자가 발생했고, 10일 후인 2월 27일에는 누적환자 수가 1천 명을 넘었다. 2월 29일 발표된 신규 확진자 수가 741명으로 정점에 치달았다. 확진자가 방문했던 종합병원을 비롯한 각종 의료기관의 응급실이 폐쇄되고 환자를 접촉했던 의료진들이 자가 격리되고 입원 병동이 폐쇄되는 등 의료체계의 공황상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환자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들을 입원시킬 수 있는 음압병실이 부족해 거의 2천여 명의 환자들이 입원을 못 했고 그중 일부는 집에서 대기하던 중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나타났다.

1월 중순 국내 첫 환자가 보고된 이후, 산발적으로 역학적 고리가 확실한 코로나19 환자 발생 양상에서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원인을 찾기 어려운 대규모 지역사회 감염으로 변화한 것이다. 대구시는 공무원, 의사회, 감염병 전문가로 구성된 ‘대구시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를 만들었고, 정부도 질병관리본부의 즉각 대응팀과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을 대구에 파견하고 2월 23일에는 ‘위기’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였다.

우선 지역 내 병원의 병상 확보와 함께 전국 병원들을 대상으로 치료 병상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입원을 기다리며 집에서 대기하는 환자들을 위한 대구시의사회 자원봉사단의 전화 상담과 함께 환자의 질병 중증도를 분류하여, 경증 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도입도 추진되었다. 특히 대구시의사회원 170여 명이 환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매일 상담하고 환자 상태를 파악한 것과 3월 2일부터 운영된 생활치료센터는 집에 대기 중인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걱정과 불안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감염력이 높은 환자들을 치료하려면 충분한 의료인력이 있어야 하고 이들 의료진을 감염에서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엔 의료진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보호구 없이 환자와 접촉하였기에 의료진이 2주간 격리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으나, 이후 방역지침의 변경과 보호구 지급 등으로 안전한 진료환경이 마련되었다. 지역의 의료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달려와 준 자원봉사의료진들과 정부가 지원한 공중보건의사, 군병원 및 공공병원 의료인력들의 노력으로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던 환자들의 진료와 검사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 및 대구시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의료장비도 지원하고, 병·의원에 의료용 마스크 등 보호구가 지급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주었다.

환자 진료체계가 잡혀가니, 감염 관리에서 특히 중요한 의심환자 및 접촉자들의 발견과 검사를 위해 신천지 신도, 요양병원 및 정신병원 의료인과 환자, 간병인, 사회복지생활시설 종사자 등 고위험 집단에 대한 전수검사를 추진하게 되었으며, 기존 검사 방법을 개선한 드라이브 스루 검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이용하게 되었다.

가파르게 상승하던 신규 확진자 수는 3월 12일 이후 백 명 아래로 감소하였고, 완치 후 격리 해제된 환자가 신규 확진 환자보다 많은 골든크로스가 나타났다. 51일째 되는 4월 8일 이후 신규 확진 환자 수가 한 자릿수를 유지하였고 5월 이후는 아예 없거나 3명 이하의 확진자가 나타났다. 결국은 금년 봄 대구에서의 코로나19는 6월 초순 총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6,880여 명을 기록하고는 1차적으로 안정화되었다.

전 국민이 노심초사하던 2020년 봄 대구·경북의 코로나19 발생이 잘 관리되어 수도권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역으로의 대규모 확산은 막았다. 이 기간 동안 대구는 전 지역의 자발적 봉쇄로 경제와 사회생활에서 큰 피해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대구의 성공적 관리로 인해 대한민국이 방역 모범국가로 불리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럽, 미국, 일본, 중동, 남미, 인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은 팬데믹으로 볼 수 있고, 우리나라 역시 9월부터 매일 100명 이상의 신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서 국민들은 스스로 조심하고 정부는 최선의 방역 대책을 수립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2. 생활치료센터의 운영 경험

2020년 3월 2일부터 1개월 동안 15개의 생활치료센터가 설치·운영되어 코로나19 확진자 중 2,700명 이상의 증상이 경미한 환자들이 입소하여 치료를 받았다. 당시 신천지교회 신도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방역 당국은 메르스 방역 경험에 의한 치료지침에 따라 확진자들을 순서대로 병실에 입원시키고 있었다. 2월 하순 확진자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격리 병상은 포화되었고, 대구에서만 입원을 기다리며 집에서 사망한 환자가 4명에 달했다. 온 도시가 마비되며 정부에서 대구의 도시 봉쇄와 같은 위협적인 언어를 구사하자 시민들은 공포에 빠져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건강한 성인은 코로나19에 걸려도 증상이 심각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완쾌될 수 있지만 고령 환자 및 당뇨나 암 등의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의 사망률은 높았다. 따라서 사망률이 높은 중증 환자들에게 의료 역량을 집중하는 쪽으로 코로나19 대응체계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즉, ① 코로나19 확진자를 나이와 혈압과 체온, 그리고 임상 증상 등을 기준으로 최중증, 중증, 중등도, 경증으로 분류하고, ② 해열제를 복용해도 체온이 38도를 넘거나 65세 이상, 당뇨 등의 만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입원 치료를 받으며, ③ 경증 환자는 생활치료센터로 이송하고 나머지 3단계의 환자들은 정도에 따라 기존 방식대로 음압격리병실 등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새로운 대응 체계가 대구의 첫 확진자 발생 후 한 달이 지난 후 완성된 것이다.

생활치료센터는 코로나19 환자 중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증’ 환자를 격리해 생활 및 의료지원을 하는 시설이다. 국가시설 또는 숙박시설을 활용한 것으로 ‘병원’은 아니지만, 전담의료진을 배치해 센터 입소자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며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입원 조치를 하였다. 이미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확진자도 증상이 호전되면 퇴원 후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생활치료센터나 환자 본인의 집 등에서 요양하도록 하였다.

생활치료센터가 도입된 배경은 집에서 사망하는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환자들을 경증과 중증으로 분류하고 중증 환자들은 상급병원 중환자실에 빨리 입원시키고 경증으로 분류된 환자들은 직원 연수원 등 대규모 시설에 수용하여 이곳에 의료진을 파견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생활치료센터 도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 환자들을 수용하고 의료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법규가 따로 없어 만약 의료사고가 생기는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설의 설치를 꺼렸다. 실제로 생활치료센터의 의료기관으로서의 법적 자격에 관한 의문이 계속 있었고, 입소환자들이 평소에 복용하던 약의 처방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인접한 보건소나 의료기관을 다시 거쳐서 배달로 받아 전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2020년 3월 1일 정부는 병상 부족으로 인해 자가격리 중 치료를 제때 못 받아 사망하는 사례를 막고자 대구의 첫 생활치료센터인 대구1 센터를 3월 2일부터 설치·운영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입원 병상 부족으로 코로나19 확진자 5,378명 가운데 약 42%인 2,252명이 자가격리 상태에 있어 이들을 격리할 시설 마련이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다. 전국 최초로 운영된 대구 중앙교육연수원 생활치료센터에는 첫날 예정된 100명의 경증 환자가 119구급차를 타고 속속 도착했다. 이 중 39명은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동산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중 증세가 가벼운 환자들이었고 나머지 61명은 각 지역 보건소의 관리하에 자가격리 중인 대기자들이었다.

생활치료센터는 전담병원의 의료진이 중심이 되어 입소한 환자들을 돌보았는데, 전담병원의 전문의와 전담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지원단을 구성하여 공중보건의, 자원봉사하는 간호인력과 함께 생활치료센터에 상주하였다. 1인 1실 숙소에서 격리돼 지내는 환자들은 지급받은 개인 체온기로 매일 2회 체온을 보고하였다. 병원 의공학과에서 개발한 전용 앱(App)을 핸드폰에 설치해두면 자료 입력이 쉽고, 입원 중 이상 증세가 있으면 즉시 전화로 연락하면 전담의료진이 대면 진료를 하고 필요시에는 약 처방을 하게 된다. 각 센터에는 폐렴 검사를 위한 X-레이 장비가 설치되었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경증 환자들은 발열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1주 뒤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24시간 간격으로 두 번 모두 음성 결과가 나오면 귀가시킨다. 만약 중간에 상태가 악화하면 거점병원 또는 대학병원으로 옮겨 집중치료 한다는 방침이다.

대구시와 경북대는 대구에 생활치료센터로 쓸 장소가 부족하자 경북대 학생들을 설득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365실의 기숙사 동을 비워 제2 생활치료센터로 운영하였다. 제2 생활치료센터로 지정해 운영한 3주 동안 확진자 373명이 입소해 병원이송 10명, 타 센터 이송 79명을 제외하고 짧은 기간 내 76%가 완치되어 퇴소하였다.

필자는 대구의 중앙교육연수원에 설치된 우리나라 첫 센터인 대구1 생활치료센터근무를 시작으로 경북대학교 학생 기숙사를 활용한 대구2 생활치료센터에 자원 근무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임상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공포심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위축된 우리 이웃을 위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 무엇이라도 현실적인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자원근무를 결정했다. 병원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어서 의무적인 코로나19 검체채취 당번은 면제해주었으나 일손이 부족한 검체채취 현장에 자원한 상태였는데, 3월 2일 대구에 생활치료센터가 생긴다는 이른 아침 뉴스를 듣고 이런 일은 내가 적임자인 것 같아 자원하게 되었다.

첫 주는 혁신도시 중앙교육연수원에 최초로 설치된 대구1 생활치료센터에서 일했고 그다음 주부터는 경북대 기숙사에 급하게 설치된 대구2 생활치료센터의 의료지원을 총괄하게 되었다.

4월 말까지 대구 경북과 인근 시도에 총 16개의 생활치료센터가 개소되어 별다른 불상사나 사망자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근무했던 의료진, 자원봉사자, 공무원들은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혹시나 모를 감염에 대비해 외부출입은 물론 가족과의 면회도 금지된 상태에서 근무하였고 완치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고 그들이 남기는 위로와 고마움의 편지에 위안을 얻었다.

3. 대구 코로나19의 교훈 및 제언

금년 봄 대구의 코로나19 사태는 2개월 이내에 빨리 안정화되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진 방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직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된 것이 아니어서 위태위태한 상황이라 불안하기만 하다.

2월부터 3개월 동안 엄청난 환자 발생에 대한 우리의 대응시 부족한 점을 다시 복기해 본 경북의대 김건엽 교수의 의견을 옮겨본다.

첫째, 코로나19의 감염력은 엄청 높으나, 메르스에 비해 치명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초기에는 알기가 어려웠으므로,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던 2월 중순 이후에도 2015년 메르스 환자 진료 시에 마련된 음압병실 및 격리 지침에 따라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확진자들을 순서대로 병실에 입원시켜서 중증 환자는 오히려 자택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 후 논의를 거쳐 환자를 중증도별로 분류했으나 그와 연동된 병상의 배정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결국, 생활치료센터의 설치와 방역지침의 개정으로 해결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현장인 대구시의 조율이 쉬운 게 아니었다.

둘째, 초기부터 고위험군 집단인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및 취약계층의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을 예방·보호하고 관리를 해야 했었다. 물론 하루에 엄청난 환자가 진단되는 재난적인 지역사회감염 상황에서 이러한 일은 쉽지가 않았다. 이러한 대처를 조기에 시행하였더라면 대구지역에 발생한 확진자 수와 160명에 달하는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방역의 주체는 방역 당국뿐 아니라 대구시민이 되어야 한다. 대구시는 최근 방역을 관 중심에서 시민 참여형으로 전환하고 지역 오피니언 리더가 참여하는 범시민대책위원회를 통해 시민생활수칙과 생활방역 실천지침 준수를 시민운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간의료기관 및 의료진의 헌신적인 참여가 이번 대구 코로나19 사태의 성공적 대응에 큰 역할을 하였지만 공공의료기관 확충 및 공공의료인력 확보 등 공공의료 인프라의 추가적인 확보도 중요한 숙제로 남아있다.

대구의 코로나19 정복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적·물적 지원 외에도 민간차원에서 엄청나게 많은 자원봉사자 및 물적 지원이 있었다. 드라이브 스루 검진과 생활치료센터의 설치와 같은 혁신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보인 자랑스러운 일들이 아닐 수 없다.

우스갯소리로 2020년 봄 대구의 코로나19는 신천지 종교집단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역사회의 깜깜이 감염보다는 대부분이 젊은 연령인 신천지 신도들 중심으로 발생하였기에 비교적 역학 관리가 쉬웠기 때문이다. 비록 의료 시스템의 붕괴까지도 야기할 수 있는 폭발적인 환자 발생이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중보건의사 및 군의관을 포함한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진의 역할이 매우 컸다.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의무복무 형태로 국가의 공공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던 공보의, 군의관들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진료와 검체채취 업무를 맡아 주었기 때문이다. 마침 대구동산병원이 새로 건축한 병원으로 이전한 후 비어있었기에 민간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타 공공병원과 함께 즉시 코로나19 전담 입원 의료기관으로 전환되어 입원 환자 진료를 잘 수행해 준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이번 대구의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된 후, 일본 전문가 및 언론과 함께 한 온라인 좌담회에서 ‘어떻게 이 많은 한국 의사와 간호사들이 즉시 근무처를 떠나 대구로 향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했고, 또한 그렇게나 많은 의무복무 의사 인력이 현장에 빠르게 투입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고 하였다.

2020년 대구의 코로나19 광풍은 많은 교훈을 남겼다. 생활치료센터라는 특수 시설이 없었다면 예상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기업·기관들도 뜻을 같이하고, 힘을 보태어 생활치료센터는 16개까지 운영되었다. 공공기관과 기업 연수동 등에 둥지를 튼 센터는 최장 60일간 운영됐으며, 3천25명의 경증 환자들이 입소해 치료를 받았다. 센터에는 그동안 1,611명이 근무했으며, 이 중 의료진이 701명, 중앙부처·군·경찰·소방 등에서 478명, 대구시 공무원 432명도 파견되어 근무했다. 생활치료센터는 타지에서 온 의료지원 인력에게는 조금 낯선 시스템이었으나 곧 적응되었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던 것 같다. 대구시와 복지부 등 중앙부처 공무원, 군인과 경찰 그리고 방역을 책임지는 환경단체 등 여러 직종의 근무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같이 협조하였다.

다만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입소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서적·심리적 고충을 적절히 해결해 줄 수 없었던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처음에는 집에 홀로 격리되어 공포감으로 죽을 것 같았다던 환자들이 생활치료센터에 오래 입소되어 있으면서 가장 힘들어한 것은 문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엄격한 격리였다. 입소 후 몇 주가 지나자 우울하고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환자들이 속출했다. 공포감이 엄습하는 전염병 환자의 치료나 격리시설에는 심리치료와 정신과 의사의 진료가 필요함을 느꼈다. 대구1 생활치료센터에서 마련했던 이른 아침의 집단 체조와 온라인 음악감상회가 퇴소 시 환자들이 평가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는 답변은 기억해 두어야 한다.

갑자기 만들어진 시설이다 보니 전체를 총괄하는 코디네이터, 센터장의 부재가 아쉬웠고, 근무 인원이나 시설·장비가 미비한 점도 있었다. 진행시켜야 할 일은 많으나, 최종 순간까지 같이 근무할 인원이 어디에서 몇 명이나 오는지 알 수 없었던 막막함이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초창기에는 방역 장비가 부족하여 불편하였고,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였기에 의료인 조차도 코로나19와의 전장에 나서지 않거나, 파견되어왔더라도 가능한 한 접촉을 회피하여 운영 상의 애로점도 있었다. 센터이긴 하나 전체를 총괄하는 부서나 인원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각 부처 파견 인원들끼리의 협의체 성격으로 유지되었다. 의료기관은 아니나 환자 진료와 후송 등 가장 중요한 임무를 고려하여, 향후 의료인이 총괄하고 행정이 지원하는 체제가 옳다고 생각한다.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 의료인과 공중보건의, 군의관, 공무원, 경찰, 소방, 전산·행정지원 등 각 분야 인원들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매우 만족스럽게 운영될 수 있었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4. 맺음말

이번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방역당국은 철저한 역학 조사와 사후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망률을 줄일 수 있고, 개인은 마스크 착용 및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며, 사회적 격리를 준수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준비된 나라만이 국민을 지켜낼 수 있으므로 평상시에 철저한 대비를 하여야 한다. 국민들은 폭발적인 감염병의 발생 시 유언비어에 휩쓸리지 말아야 하며, 정부와 민간은 단결하여 의료체계를 잘 유지하고 고령자와 사회적 취약자를 보호하여야 한다. 이는 의료인과 방역 당국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의 총 역량을 동원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앞으로 반복될 전 세계적인 감염병 관리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과 공조가 필수적 일 것이다. 의료인들도 이와 같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 발생 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자라는 사명감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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