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멈춰버린 2020년, ‘정지의 힘’으로 나는 미래를 간다
구성수 경기도 하남시보건소 소장나의 시간은 정지되었다. 나의 일상은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
금년 1월 중국 우한발 감염 소식 후, 설 연휴 아이들과의 만남을 위한 미국행 비행기에 남편만 태우고 나는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설 연휴 때 홀로 집에 남은 나는 2009년, 2015년의 아픔이 생생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종플루가 유행한 2009년 나는 분당구보건소장이었다. 이때 처음 대규모 감염병 사태를 경험하였다. 그때는 대응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던 때라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 감염병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감염병 팀장이 사표를 냈다. 보건소는 검사를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 찼다. 타미플루가 치료제로 쓰이고 나서야 상황이 진정되었다.
중원구보건소장으로 재직 중인 2015년에 메르스가 왔다. 확진자 동선에 따라 종합병원 응급실, 이비인후과 등 1층 외래가 폐쇄조치 되었고, 하룻밤 새 자가격리자가 400명이나 발생했다. 밤새 씨름하는 감염병 관리보다 민원인들에게 시달리고 시장의 정치적 압박과 고통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메르스 사태 진정 후 시작한 지독한 시청 감사. 나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메르스 대응 실책에 대한 감사였다. “의사인데 나가서 편히 돈이나 벌지, 왜 힘들게 소장 하세요?”라며 사표를 강요하는 감사과장에게 하남 전출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아! 나는 40대 초반부터 4급 공무원이 되어 20년간 승진도 못 하면서 소신껏(?) 일만 하는, 시장 지시에 복종 안 하는 미운 오리 새끼에 불과할 뿐이었다.
2015년 11월, 20년 동안 나의 열정을 불살라 일했던 성남시와 작별하고 하남시에서의 또 다른 시작. 하지만 보건소장으로서의 자존감과 자부심이 짓밟힌 아픔은 너무 컸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보건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였다.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맞서 싸울 용기를 내야 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려면 사전준비 만이 답이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위기 속에선 초기대응이 가장 중요했고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했다.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 때의 ‘축적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성남과 달리 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어서 유일하게 보건소에서만 선별진료소를 운영해야만 하는 하남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효율적인 대응밖에 없었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 허겁지겁 보건소를 개조하고 자원봉사에 의존하여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설 연휴에 시장님께 용기를 내어 보고 드렸다. 보건소의 일반진료를 중단하고, 필수업무만 남기고 감염병 업무에 전념하겠다고. 그동안 민간의료기관과 충돌을 빚던 보건소의 업무를 민간에 이관하기 시작했다. 연휴가 채 끝나기도 전에 조직 정비를 위해 보건소 기능전환 회의를 했다. 보건소가 시행하고 있는 업무를 전부 나열하고 이관계획을 세웠다. 민간의료기관에 협조를 구해 보건증 발급업무를 이관하고 일반진료도 중단하였고, 사실상 2월 2일에 보건소 문을 닫았다. 민원이 빗발쳤으나 보건소 인력 50여 명은 코로나19 대응에만 전념토록 조직을 정비했다.
보건소 기능전환을 위해 보건소 내 벽체 설치 등 간단한 리모델링 후, 보건소 의사라고는 나와 관리 의사뿐이었기 때문에 의사확보를 위해 지역개원의들의 협조를 받아야 했다. 급히 민·관·군 협의체를 정비한 후 이틀 만에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즉시 대시민 홍보 계획을 수립했다. 1월 30일 오전 민·관·군 협의체 개최 후 위원들과 함께 보건소 선별진료소 라운딩을 했고, 오후 2시에는 시장님 주재 기자간담회를 실시하여 시장님과 함께 1시간가량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민간의료기관과의 신속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 민·관 협력 핫라인 개설, 단체 카톡방 개설, 선별진료 의뢰 전용 폰을 개설했다. 이 중 신의 한 수는 민·관 핫라인 구축이었다. 즉, 민과 관이 각각의 소통담당관을 지정했다. 의사회 측은 수십 년간 시민단체 활동 경험을 가진 전 하남시의사회장이었던 분을 위촉했고, 보건소 측은 30년간의 보건소장 경력을 지닌 이홍재 소장을 위촉했다.
하남시는 인력확충(시청 행정직 10명 파견)과 직원교육뿐 아니라 방역물품 및 시설확보에 재원을 아끼지 않았다. 검체채취와 엑스레이 촬영을 할 수 있는 컨테이너 구입, 마스크·방역복 등 방역물품 확보와 드라이브스루도 가능하게끔 선별진료소의 보강 등을 위해 시 재난안전기금의 상당액을 요구하자 담당 공무원이 나를 찾아왔다. 타 시보다 10배나 많이 집행했다고, “소장님 이러시다가 나중에 감사받아요.”라며 대신 걱정을 했다.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빨리 외양간을 튼튼히 하기 위해 초기 재원 투입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실무진을 설득하며 시장님도 설득했다. “시장님, 하남은 최상의 프리미엄 보험을 드는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 안 하면 감사한 것이고 부득이 발생한다 해도 보험 덕에 피해가 최소화되니 마음이 편하지 않나요? 프리미엄 보험료는 아깝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보험 잘 들어놓으면 발생 안 한다는 속설을 믿어보시자고요.” 여기에는 시장님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2월 18일 대구 사태 후 시중에 방역 의료용품이 고갈되었다. 나는 초기부터 방역용품 고갈에 대비해 미리 마스크 등 물자를 확보해 놓았었다. 1순위 마스크 지급은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라며 시의원에게도 공급하지 않고, 의사회에 3회에 걸쳐 비축한 마스크를 무상 공급하였다. 마스크 품귀 현상 시(3차 지원 시) 남의 눈을 피해 밤에 몰래 검은 비닐에 마스크를 싸서 개인차로 의사회에 전달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보건소와 민간의료기관은 한 몸이니 감염병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해 함께 대응해야 한다며 끈끈한 동료애를 강조하면서….
지역사회감염이 확산하면 동네 의원이 게이트키퍼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의사가 진료를 거부하고 환자도 병원이 무서워 못 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무작정 관내 내과 원장님을 찾아가 “이곳에서 호흡기 환자만 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 후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3월 12일 보건소에 호흡기 클리닉을 오픈했다. 소문을 듣고 질병관리본부와 복지부에서 둘러보고 간지 얼마후 전국에 호흡기 클리닉을 1,000개소 설치한다는 복지부의 발표를 듣고 깜짝 놀랐다.
3월 17일 드디어 하남시에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지만, 오히려 나는 그날 처음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조직, 인력, 예산투입 등 계속 인적·물적 자원을 보강하며 열심히 준비한 덕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계속 확진자가 발생하자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이들에 대한 동선공개였다. 지자체마다 경쟁하듯 민원인들의 알 권리 요구에 부응하는 투명한(?) 동선공개로 보건소를 압박했다. 탈진 직전까지 갈 정도로 업무에 최선을 다해도 보건소 직원들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온통 폐쇄적 동선공개에 대한 비난뿐이었다. 하남시장님은 시민들의 폭탄 악플에 시달리면서도 “하남시의 감염병 컨트롤타워는 구성수 보건소장입니다.”라고 하시며 보건소장에게 힘을 실어주셨다.
딸아이가 미국에서 귀국한 후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자 나는 2주간 보건소 앞 모텔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이때 자가격리자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자가격리자의 자살소동을 겪으면서 나의 경험을 반영해 자가격리 담당 공무원 대상의 교육과정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역 내 확진자가 생길 때마다 동선추적을 위해 CCTV를 확보하여 역학조사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질본에 보고하고, 접촉자를 관리하고, 다른 지자체와 정보를 공유하고, 해외입국자 및 자가격리자를 관리하고, 주민의 민원에 대응하는 등 끝이 없는 업무에 직원들이 번아웃에 빠졌다. 나 역시 버틸 힘이 없었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직원들에게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숙제를 해결할 묘안을 찾기 위해 며칠째 잠을 못 이루었고 결국, 3개월마다 직원들의 업무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모든 직원의 전문성 강화가 목적이었다. 인력을 갈아 넣는 방식은 장기전을 준비하기에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린 결정이었다.
7월 28일 위드 코비드 시대 보건소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한 보건소 역량 강화 워크숍’ 개최와 최보율 교수님과 함께 만들고 있는 하남시 코로나19 백서는 시스템 강화를 위한 또 다른 시작이었다.
코로나19 최일선에서 많이 지쳤지만 내가 여기서 일함으로써 감염병 방역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이 나의 버팀목이다. 아직도 나는 전방을 사수하며 끊임없이 배우며 나를 돌아보고 있다.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때마다 보건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경험들 속에서 아파하고 때론 기뻐하며이 순간을 즐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