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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공의학회 20년사 (2000~2020 Years)
대한공공의학회와 함께한 사람들

대한공공의학회와 함께한 사람들

자유기고 | 공중보건과 공공의료 그리고 대한공공의학회

공공의료는 공감·공유·공존이다

서해숙 서울시 서북병원 진료부 부장 대한공공의학회 법제이사

목하 공공의료와 공공의대가 화두다. 공공의대를 굳이 끄집어낸 그 내심이 의심쩍든 아니든 공공의료에 관심이 쏠린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2020년 8월,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1.3개로 OECD 평균 3.0개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 최하위권이다. 그럼에도 국내 공공의료기관은 전 지구적인 감염병인 코로나19를 선봉에서 맞서고 있다. 25년 이상 시립병원에 근무하면서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퇴적물 속을 이리저리 헤쳐 ‘공공의료의 본질’과 닮은 기억의 파편들을 끄집어내 봄은 이런 시대적 맥락과 닿아있지 않을까….

공공의료는 ‘환자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10년 전, 엉겁결에 아시아 수도급 대도시의 결핵 공동조사에 참여하면서, 도쿄시의 노숙 결핵 환자가 겪었던 심정을 접하게 되었다. 그 노숙인은 “결핵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쩔 수 없이 길에서 노숙해야 했던 첫날밤이 떠올랐다.”고 했다. 노숙도 좌절이지만, 결핵도 그에 버금가는 절망인 등가等價의 고통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담당했던 노숙 환자들을 다시금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도 어디선가 거리로 내몰린 첫날 밤에 잠을 청하려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오싹한 추위와 찬 이슬을 맞았겠지…, 얼마나 허허虛虛했을까….’

우리 사회의 노숙인 문제는 2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회-병리현상(Sociopathological phenomenon)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렇게 노숙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내 나름대로 그들을 정의하게 되었다. 돈 없고, 직업 없고, 가족 없고, 건강 없는 ‘상실의 극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공공의료는 ‘환자-의사 간 크나큰 상호작용’이다

“Whose life are you affecting?(당신은 누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위독한 환자들이 생을 치열하게 이어갈 때마다 이 글을 되뇌곤 한다. 한때 내가 담당한 환자의 삶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 자만심을 일깨워준 환자는 세상적으로 정말 볼품없는 예순을 갓 넘긴 여자 환자였다. 심각한 결핵 후유증에 시달린 양쪽 폐는 폐렴과 호흡부전에 여지없이 속수무책이었다. 6년 동안 숨이 차고 피고름이 덩어리로 나올 때마다 나를 찾아온 그녀는 어느새 내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비보를 접했다. 그 환자가 죽음을 예감한 순간에 너무나 간절히 서북병원에 오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애써 준 것도 고마운데 자신의 마지막을 나에게 당부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어서 서북병원 정문 앞에서 119 구급차의 방향을 돌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2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다.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왔다.

죽음이 시시각각 엄습해오는 긴박함 속에서 어떻게 119의 방향을 돌릴 수 있었을까? 그렇게까지 주치의를 배려하고 사랑하고 떠나간 사람, 숨이 찬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상을 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 시간으로 만든 사람…, 지금까지 그런 사람을 여럿 만났다. 그들은 내 인생에 찾아온 거인이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 그립다. 이처럼 환자가 의사를 의지하듯, 나도 환자로부터 위로받고 영향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신에게도 그런 거인이 있으십니까?…

공공의료는 ‘높은 건강형평성의 추구’이다

불법 체류자는 그들 고향과 다른 국경의 테두리 내에서 꿈꾸던 잡노마드와는 다른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하층민으로 살아간다. 그런 순간에 찾아온 결핵은 야속한 불청객이다. 버거운 치료비 부담과 전염병은 그들 삶을 옭아매는 굴레가 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어떤 적실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30대 남자, 불법 체류자, 독거, 일용직 근로자, 빈곤, 단절된 건강 안전망, 비순응자, 다제내성 결핵 환자, 객혈로 뇌사 판정, 장기와상, 막대한 치료비용, 24시간 간병 필요, 빈곤국 현지 입장, 인권…, 주치의였던 기간 내내 한 건의 처방을 낼 때도 인간의 존엄성과 치료비 사이에서 멍하니 오락가락하였다. 마치 우주의 온갖 고민거리를 떠 앉은 것처럼 울컥한 시간이었다. 대사관과 항공사를 찾아다니면서, 불법 체류자에 대한 정책기조가 규제와 포용의 갈림길에서 그래도 포용을 견지함을 알게 되었다. 그런 관점(Lens)이 내겐 많은 위로가 되었고, 끝까지 건강권을 수호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공의료는 ‘코로나19에 맞선 강한 교두보’이다

분명 페스트를 능가하는 코로나19는 아직도 우리를 아프게 할퀴고 있다. 지금까지 감추어왔거나 대충했거나 몰랐던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당황스럽고 화들짝 놀라는 일이 되풀이된다. 기승을 멈추지 않는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최전선에는 시·도와 보건소와 공공병원이 버티고 있다. ‘공익적 질병 퇴치’라는 공감대 속에서 함께 몰입하면서 심장이 살아있고, 심장이 뜨겁게 반응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 또한 역학조사관이었고 확진자 주치의이기도 하였다. 6개월간의 역학조사관은 새로운 공공적 가치가 주어진 경험이었다. 초반 역학조사관의 주된 업무는 기초역학조사서의 사례분류였다. 보건소로부터 온종일 수십 통의 연락을 받다보니 밤에도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 한 달 후부터 자치구 상황실에서 확진자의 추정 감염경로를 파악하고 밀접접촉자를 선별하여 검체채취와 자가격리를 결정했는데, 이는 수사관의 업무와 많이 닮았다. 매번 확진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하고, 때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한 역학조사관들과 팀 단위로 활동했는데, 다들 탁월한 서울시 및 자치구 역학조사관분을 알게 된 건 내겐 큰 선물이었다. 또한, 2개월 간의 확진자 병동 주치의로서의 경험은 더 폭넓고 풍부한 역학조사와 감염병 시대의 궤적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성장시켜 주었다.

현대인은 때론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자신만의 삶에 갇혀 살아간다고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옆에는 ‘너’가 그리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너무 엄연한 사실을 증명하였다. 서로들 관계없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영역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깨닫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미터의 미생물을 통해서 우리 눈에 정작 보였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게 된 관계의 연결고리, 즉 공동체를 의식하게 된 시간이다.

내가 지향하는 공공의료는 질병과 결핍의 아픔을 안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을 손잡아 일으켜 세상과 다시 소통하도록 함께 하는 것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마땅히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더 많이 웃고,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익숙하게 살아가고, 자연스레 이 땅이 환한 미래를 약속하는 곳이 되길 기대해 본다. 그런 기대감이 어서 뿌리내리도록 우리가 앞으로도 팍팍한 삶에 지친 그들에게 손 내밀어 위로해주는 ‘급난지붕急難之朋’ 같은 진정한 벗이 되어 주어야겠다. 매번 공공성과 효율성의 논쟁 속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정체성, 즉 ‘공공적’ 기여가 더 크게 빛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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