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증진을 위한 건강투자

조인성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원장 대한공공의학회 부회장

세계보건기구(WHO)는 1946년 건강(Well-being)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로 정의했습니다. 건강증진(Health Promotion)은 더 나은 건강 상태를 목표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수준을 적극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한 투자(Investment for Health)는 건강할 때 이를 능동적으로 지키려는 개인적·사회적·국가적 노력을 모두 일컫는 말입니다. 건강투자는 전 세계에서 새로운 보건정책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건강투자는 아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건강증진을 위한 건강투자에 정부의 지원이 시급합니다. 한국의 보건 부문 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예방 부분에의 투자는 미진한 상황입니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은 건강증진사업의 원활한 추진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됐습니다. 이 기금은 미래 의료비 절감을 위한 사전 예방적 건강투자, 공공보건의료 기반 확충 등에 쓰입니다. 2020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82조 5,269억 원으로 중앙부처 중 최고액을 기록했습니다. 이 가운데 국민건강생활실천사업에 쓰이는 돈은 3,546억 원입니다.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의 단 0.4%에 불과합니다.

건강에 대한 투자가 확대된다면, 건강수명 연장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2.7세이지만,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사는 건강수명은 64.4세(WHO 기준으로는 73세)에 불과합니다. 생애 마지막 18.3년은 건강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셈입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초고령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 사회의 과제입니다. 한국은 2017년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겨 고령 사회로 진입했고, 2025년에는 그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가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만성질환을 겪는 환자가 늘고 있고, 노인 진료비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8년 우리나라의 연간 노인 진료비는 약 31조 원으로, 전체 진료비 중 40.8%를 차지했습니다. 2025년에는 6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국가의 경제개발을 위해서도 건강투자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특히 의료취약지에 의료 인력 확보, 의료 인프라 확충, 지역의료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도시와 농촌 주민 간 건강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의사의 52.1%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농촌에서 활동하는 의사는 5.7%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호흡기·소화기계·근골격계 질환 등의 유병률과 사망률도 농촌이 도시보다 높습니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지역별로 최대 14배까지 차이 납니다. 응급의료기관이 없는 시·군·구도 32개에 달합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국민의 44.1%가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소가 시급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농촌과 도서지방 등이 공공의료 인력을 충원하고 의료 시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합니다.

질병을 예방하는 건강증진에 투자하고 잠재력을 확보해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사전예방 및 질병관리 시스템을 국가적으로 도입해 초고령 시대에 대비하는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30(Health Plan 2030)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2017년부터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30의 기본틀 확정, 수립 매뉴얼 개발, 분과별 지표 세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계획에는 모든 사람의 건강증진, 전 생애주기에 걸친 건강권인 ‘평생 건강’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보건의료정책 목표를 질병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국민에게 사전적 건강증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일상 생활양식과 사회경제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실현하고, 국민 평생 건강을 위한 믿음직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 우리 기관의 목표입니다. 우리 원은 이미 보건소, 보건지소 등 지역보건의료기관과 함께 국가정책 사업을 시행 중입니다. 금연, 절주, 비만 예방, 만성질환 관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원이 2019년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사업 추진에도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대한공공의학회 20년사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학회는 우리나라 공공의료 영역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대한공공의학회는 정부와 국회의 건강투자 확대를 통해 더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겠습니다.